2009년 10월 27일 화요일

10월 26일 안중근 그리고 박정희 조금 되돌아보는 인류사

10월 26일 안중근 그리고 박정희

 

26일은 한국사 역사 속 두 인물의 기념일이다. 그리고 먼저 살다 돌아가신 이름없는 많은 선조들의 기일이다.   [다 같은 죽음인데 그 의미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한 안중근 의사는 순국(1910년 3월 26일)이라고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서거(1979년 10월 26일)라고 한다. 이름 없는 일반인들은 그냥 죽음 혹은 사망, 별세 라고 한다.(죽음에 대한 높임말은 위키에 죽음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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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26일은 안중근에 의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상 위키 링크 참조]이 있었다.

그의 행적은 대부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며 모른다면 위의 링크를 참조하라.

더 자세한 것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라. http://www.greatkorean.org/ahn/history.php 

 

그의 사상을 보여주는 유묵들을 살펴보자.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

<굳이 뱀다리를 붙이자면 보통 글자는 눈으로 보고 뇌로 파악한다. 그런데 가시가 눈에 돋는게 아니라 입에 돋는다고 한다. 그 의미를 새겨보자. 讀독 글자는 읽는다라는 뜻이다. 눈으로 보지만 말고 소리내어 읽어보라.>

안중근 의사 유묵 링크를 참조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눈앞에 이익이 보이거든 먼저 의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 목숨을 바쳐라.

<이 글은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에 커다란 비로 서 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65796 이 글의 본문 중간쯤에 보인다.>

 

戒愼乎其所不睹 (계신호기소불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경계하고 삼간다)이 글은 블로그 제목으로 쓰고 있다.

 

不仁者不可以久處約 (불인자불가이구처약, 어질지 않은 자는 곤궁에 처했을 때 오래 견디지 못한다)

 

敏而好學不恥下問 (민이호학불치하문, 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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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다.

위키를 보면 그의 태아기의 일화는(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막내의 설움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후 박정희 회고록에도 보이는데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30301 이 글에서 볼수있다.

 

더 쓸 것이 많지만 역시나 논란의 소지가 있으므로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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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식량)과 생명(개체수)은 반비례를 보여주는 자연계에서 인류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도구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상과 문화를 이루어 내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크게보면 자연의 한계와의 싸움이다. 이것은 현대 그것도 1980년이 지나서야 겨우 인식하고 있다. 고금의 선지자들은 이것에 대해 수많이 언급하고 있었지만 21세기 들어서 기후온난화가 현실로 보여지기 시작하자 겨우 세계적인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갑자기 '먼 뚱단지 같은 애기냐' 할 것이다. 도에 관심있는 사람???

제국주의는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가? 그것은 늘어난 자국민의 식량 확보를 위해서이다. 이념이며 사상이 어쩌고 하는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결론은 남들은 죽든 말든 자국민만 잘먹고 잘살자는 것이 제국주의이다. 그 와중에 자국민들은 개고생하고 상위층만 잘먹고 잘살자고 한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한술 더 떠 독일인들만 지구상에 남기려고 하였다. 그가 시간이 조금만 더 있어 제트엔진과 핵을 사용했더라면 지구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가장 먼저 한것이 바로 쌀의 약탈이었다. 소설 아리랑을 읽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많이 퍼갔는지 알 것이다.

 

식량에 대해 잠깐 농담을 해본다.

창세기에 보면 아화가 뱀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는다. 선악과를 먹지말고 뱀을 잡아 먹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의 뱀은 다리가 있어서 더 무서웠나 보다. 이 사건은 인간에게 여러가지의 고난으로 이어 지는데 여자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주어지고 남자는 땅을 일구고 동물을 사육하는 노동을 하게된다. 뱀은 다리가 없어져 배로 기어 다니게 되고 여자의 뒤굼치나 물다가 돌에 맞아죽는 신세로 전락한다.

 

여기서 처음 노동이 시작된 것이다. 아담과 아화 둘만 살았을때는 그냥 자라는데로 따 먹고 자라는데로 잡아 먹으면 됐다. 그리고 자식을 낳거나 하여 종의 보존도 필요 없었다. 왜냐면 죽지 않았을 것이므로(요건 애매하다. 왜냐면 선악과를 먹은후 생명과도 먹을까 하여 에덴동산에서 쫓아낸다는 구절이 나중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달라졌다. 이제 자식을 낳아햐 하며 그 자식들을 위해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 노동을 하지 않은 자연에서 얻는 것 만으로는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선악과란 과연 무었일까? 무화과라고도 한다. 이것은 오늘날 19금이라 하는 바로 그것이다.

 

창세기는 이런 내용을 아주 뛰어난 상상력으로 구체적이지만 은유적으로, 사실적이지만 미화적으로, 간략하지만 광범위하게 적은 이야기이다.

 

노아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아보자. 대홍수에 대해서는 창세기 이외에 아랍 전역에서 신화로 전해지고 있다. 이후 수메르의 점토판이 발견된후 확실시 되고 있다. 이때의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의 모습은 현재와 전혀 다르다. 2줄기는 현재보더 더 가까이 흘렀고 그 주위에 수메르인들은 주거를 짓고 살고 있엇다. 이들은 아마 여러 차레의 대홍수로 많은 손실을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홍수는 물길마저 바꿔놓고 더 이상 그 곳에 살수 없게 되어 이주하게 된다.(물길이 바뀌고 그곳은 현재와 같이 사막이 되었다.) 노아는 이런 이주민 중의 한명으로 보인다.

 

노아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 몇줄에 간략하게 대홍수의 이유를 적어놓았다. 그냥 지나친다면 무시될 정도로 간략하고 또 19금에 해당하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의 딸들이 아름다워 이끌린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내로 삼아 자식들을 낳는다. 이에 하느님이 그들의 난잡함을 보고 그들의 생을 120년으로 하고 영원히 살지 못하게 한다. 그들 사이에 낳은 자식들은 신화속의 용사나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은 착하지 못하고 악을 행하므로 이에 화가난 하느님은 모든 생명체를 지구상에서 쓸어버리고 노아의 가족(노아, 처, 세아들, 세며느리)과 각쌍들의 선택된 동물만을 남겨 제2의 창세기를 한다.

이 부분은 상당히 많은 내용이 있었음에 분명하다. 현재는 단지 몇줄만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서로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다. 줄이고 줄이고 줄여 이런 내용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네피림'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전부터 땅에 살던 인간을 뜻하는 것인지 주석처럼 장부(사람 남자)를 뜻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아들들을 뜻하는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 여자 사이에서의 자식들을 뜻하는지 하나님의 아들들과 또다른 하나님의 딸들과의 자식들을 뜻하는지 모르겟다. 일부에서는 천사라고도 한다.

또 다른 하나님에 대한 의문은 6장 3절 '여호와 왈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리라'라느 구절에서 여호와는 하나님 자신인데 그가 나의 신이라 한 그 신은 누구란 말인가? 이것은 번역과정에서 몸신자를 그대로 쓴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즉 '여호와 왈 나의 몸이 많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지 못하니 그들을 계속 옆에서 하나하나 돌보아 줄 수 없다. 그러니 신의 아들들은 인간의 육체를 가져 고통을 느끼고 120세가 되면 알아서 죽어라.' 중간 생략 '생각해보니 120년도 길구나. 이 참에 싹 정리해야 겟다. 대홍수를 일으켜 싹 쓸어버리리라.'

 

간단히 쓴다는 것이 길어졋다. 그냥 읽고 지나갔을때 간과하는 것을 밝힌다. 네피림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논란거리가 될게 분명하다. 네피림이란 여호와가 천지창조할때 땅에서 온갖동물을 내라 함에 나온 다른 동물들과 같이 나온 인간의 형상을 띤 동물 즉 인간을 뜻한다. 이를테면 그냥 나온 인간들이다.

그에 반해 여호와가 따로 흙으로 빚어서 정성들이고 신경써서 만든 인간은 아담과 이브다. 이해 되는가? 바로 이런 신경써서 제대로 만든 인간의 후예가 바로 노아 아브람 모세 다윗으로 이어지는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나머지 인간은 그냥 떨거지(??) 그냥 맘에 안들면 홍수로 쓸어버리는 그런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히틀러가 유태인을 싫어한 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미 유태인 그들이 먼저 이런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류의 글이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임의로 지워진 것이 분명하다.

이후 기독교는 예수를 다윗의 직계로 묘사하여 또 다른 정통성을 추구한다. 직계가 그렇게 중요한가?? 소설 다빈치코드는 이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편협한 유대교에 반하여 범인류적 사랑을 역설함으로써 유대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새로운 사상 기독교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런 일부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을 설명하려고 글이 길어졌다. 이것은 인류역사의 온갖 전쟁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순수혈통을 지키려는 예는 수 없이 나온다. 굳이 사촌과 결혼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영국왕실의 근친혼에 의한 혈우병 폐해가 증명되는 18세기 까지도 이것은 이어져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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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19세기 중반에 반노예제, 여성인권운동, 군비축소 등에 중점을 두고 조직되기 시작하였지만, 비정부 기구라는 용어는 1945년 국제 연합 설립과 함께 국가가 아닌 기구를 설명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세계화로 인해 한 국가단위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사항들이 생겨났다. 특히, 자유무역협정 같은 조약이나 국제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의 활동은 경제 부문에 한정되므로, 세계화로 인한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새로운 유형의 단체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비정부 기구는 인권문제, 지속가능한 계발, 저개발국 지원, 긴급구호 등 다양한 사항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하고 있다.

 

이것을 간혹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정부 기구를 무정부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편견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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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라'

아니면 '소 잃어봐야 외양간이 허술암을 알아 고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소 잃기 전에는 외양간에 신경쓰지 마라'

 

'담이 없으면 도둑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담이 높다면 도둑을 끌어 들이다.'

 

프로그램을 아무리 잘짜도 어디에 구멍이 있는지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해커가 그 곳을 찾는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도둑이 없게 만들면 된다. 높은담을 넘는 도둑이나 어려운 프로그램을 뜷는 해커는 없애기 힘들다. 우리가 없앨 수 있는 도둑은 바로 생계형 도둑을 말한다. 단지 빵 한조각을 훔치던 장발장을 비롯한 수많은 도둑을 우리는 우리 스스로 주변에 만들고 있지 않은가?

 

왜 네덜란드의 꼬마아이는 어른들이 미리 보수 했어야 할 둑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어야 했는가?

그 옛날 수메르인들은 상류의 큰비로 강물이 넘치고 있는데도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대홍수에 죽어 나갔는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분노로 대홍수가 있었다는 설화를 가지게 되었나?

 

다들 어디가서 골프 치고 있었나 ?  아니면 호수가 모텔로 놀러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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