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鉢千家飯(일발천가반) 孤身萬里遊(고신만리유)
靑日觀人少(청일도인소) 問路白雲頭(문로백운두)
바루대 하나로 천 집의 밥을 얻어먹으며 외로운 이 몸 만리 길을 떠다니네
맑은 날에도 사람 만나기가 어렵고 저 흰구름에게 갈 길을 묻네
鉢 바리때. 범어 Pātra의 음역, 발우, 밥 그릇,
靑日 이 글자는 靑目청목으로도 쓰여진다. 청목일경우 푸른눈으로 해석되는데 그 뜻이 애메해진다. '靑目睹人少 (청목도인소) 푸른 눈 알아보는 이 드무니' 푸른눈을 가진 자는 유럽인들 중에도 별로 없다. 그런자가 이 시가 쓰여질 당시 중국에 있었을리 없다. 시가 전해지는 과정에서 날일자가 눈목자로 오기 되고. 그 뜻을 확대 해석했을 수도 있다. 청목을 깨달은자의 눈, 현자의 눈, 미륵의 눈 등으로 해석하여, 작자의 신비성을 추구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어쨋든 외로운 만리길을 가는중 사람을 별로 못 만났다는 뜻이다. 아래의 작자에 대한 설명을 보라.
청목을 가진자가 있었다. 중국에 도, 불, 선을 전한 시조 달마는 벽안을 가진 청목자엿다고 한다. 그렇다고 벽안인자는 '모두 청목자 즉 현자이다'라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청목인 자는 깨달은 자이다. 유럽에는 청목인 사람이 많다. 유럽인중 청목인 자는 깨달은 자이다. 는 틀린 3단 논법이다.
覩 볼 도 | 睹와 同字 | 부수 : 見 | 총획 : 16획 글마다 다르게 쓰인 覩도자는 睹도자와 같은 글자. 간혹 관이나 친이라고 발음을 써놓았지만 틀린 것이다.
問路白雲頭 이것은 '길을 묻는 사이 머리에는 백발이 내렸네'로 해석하여 운치를 더하기도 한다.
직역하면 '머리 위 흰 구름에게 길을 묻는다'이지만 구름이 머리 주위에 보일 정도로 높은 산에 올라 사람은 없으니 구름에게 길을 물어본다는 설정은 재밌다. 또는 만리길을 다니다 겨우 사람을 만나 길을 물어 보는데 문득 자신을 보니 어느새 머리가 백발이 보일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는 설정도 운치가 있다.
또는 '두루 돌아 다녀도 깨달은 자 만나기 힘드니 벗할 이는 구름뿐이 없구나'라고 해석해도 좋아 보인다.
작자
포대(布袋)화상(?~916, 917)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이름은 계차(契此)이고 법명은 차(此)이다. 호를 장정자(長汀子)라 했고 악림사에서 출가 했다. 양나라 정명 2년(916) 3월 혹은 3년(917)에 입적하엿다.
몸집이 뚱뚱하고, 이마는 늘 찡그려 깊은 주름이 잡혀 있고, 커다란 배는 늘어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지팡이에 큰 자루를 지니고 다녔는데 필요한 소지품은 모두 그 자루 속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무엇이든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였는데 얻은 물건도 모두 자루 속에 넣었다. 먹을 것을 주면 받아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자루 속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포대화상(布袋和尙)이라고 붙였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고 계속 어디론가 방황하면서 늘 길을 걸어다니며 일생을 보냈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
자루 속에다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특히 날씨 예측이나 사람들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잘 예언하였는데 맞지 않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햇빛 창창한 대낮에 나막신을 끌고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가 내리곤 햇다. 그리고 장마철이라 비가 계속 내리다가 스님이 짚신을 신고 다니면 비가 그치고 날이 개이기 시작하였다.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복장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알아채곤 했다. 그는 사람과 어울려 길흉화복에 대해 곧잘 얘기를 했는데 아주 신통했다.
한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 하셨다면 저회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포대를 후다닥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취급 받기도 하였으나 그의 행동은 상견(相見), 사견(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그는 항시 개 뼈다귀로 가득한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사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때론 울음 짓기도하고 아이들과 실갱이 하기도하며 바보 짓을 하였다.
다음은 그의 노래이다.
夜夜胞佛眠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다음은 그가 입적하기전 마지막으로 읊은 계송이라고 한다. 그의 입적시기는 916년 3월 또는 917년이라고 하는데 불문명하다.
彌勒眞彌勒(미륵진미륵) 分身百千億(분신백천억)
時時示時人(시시시시인) 時人自不識(시인자불식)
미륵 참 미륵이여 천백 억의 몸으로 나누어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그의 사후 그때서야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 보살의 화현(化現)이라 하여, 그 모습을 그려서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중국 악림사 입구에 있는 미륵불은 양반 다리를 하고 크게 웃고 있는 포대화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미륵상 곁에는 '배는 천하의 품기 어려운 일도 다 포용할 수 있고, 늘 웃는 그 입은 세상의 가소로운 인간을 비웃는구나.' 라는 글귀가 있다. 그리고 악림사의 동당에는 그의 온몸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我有一布袋(아유일포대)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罣碍(허공무가애)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遍宇宙(전개편우주)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입시관자재)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騰騰自在無所爲(등등자재무소위) 늠름하고 자재하여 하는 일 없으니
閔閑究竟出家兒(민한구경출가아) 한가롭고 한가로와 출가한 장부일세.
若覩目前眞大道(약친목전진대도) 눈 앞에 참된 도를 본다 하여도
不見纖毫也大奇(불견섬호야대기) 티끌만큼도 기이하게 여기지 않으리.
그의 행적이 유럽에 전해져 산타크로스의 등장을 초래했다는 설도 있다. 믿고 말고는 자유이며, 그럴듯한 비유와 상상을 찾아 이야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더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행적을 보인 기인들이 많이 있다.
원효대사는 그 대표적인 분이다. 달디 단 해갈수가 알고보니 해골에 담겼었음을 알고 토하다 문득 깨달음을 얻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이것은 후대에 과장된 것. 본래 비가 많이 내려 거처를 구하다 초막에 들러 편히 쉬게된다. 하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곳은 무덤이었다. 그날도 비가 많이 내려 다시 그곳에 거할수 밖에 없게되는데, 전날밤 편히 쉬었던 그곳이 오늘은 무덤이라 편하지 않은 것이다. 아래 감은 초막, 또는 땅막, 분은 무덤을 뜻한다. 식은 인식 즉 보고 듣고 하는 오감을 뜻한다.)
마음이 생하는 까닭에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감(龕)과 분(墳)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현상이 또한 식(識)에 기초한다.
마음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따로 구하랴!
심생즉 종종법생(心生則 種種法生)
심멸즉 감분불이(心滅則 龕墳不二)
삼계유심 만법유식(三界唯心 萬法唯識)
심외무법 호용별구(心外無法 胡用別求)
그의 행적중 요석공주와의 결혼이 가장 특이한 점이다.
'어느날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려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태종이 이 말의 뜻을 알고 과부로 있었던 요석공주와 결혼을 시키고, 설총을 낳게 된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기르는 등(설총을 낳음으로써 파계) 기인에 가까운 많은 행적으로 화엄경을 설법하였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과 무식한 사람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려는 뜻에서 행한 것이었다. 이렇게 행함으로서 귀족사회와 상류층에서만 신앙되던 신라의 불교를 널리 대중화시켜 누구라도 불교를 믿고 부처님을 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