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직립보행 기원과 발전
인류가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직립 보행이다. 두발로 걸음으로서 자유로와진 손으로 도구를 사용함으로 인류 진화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직립보행이 먼저인지 도구의 사용이 먼저인지 ??
직립보행이 먼저라는 의견은 눈의 높은 곳에서의 경계를 그 첫째로 꼽는다. 평활한 대지에서 멀리 보기 위해 서게되고 그것이 발전해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특별한 방어 수단이 없는 연약한 인류가 평지에 오래 있었을리가 없다. 인류가 평지로 나온것은 충분한 불, 도구 등 방어수단이 생긴 이후이다. 또한 근처의 나무나 바위 등의 높은 곳이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평지의 사자나 치타 등이 걷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서서 보지도 않는다.
두발로 서서 주변을 경계하는 동물이 있다. 대부분의 영장류, 마모트, 미어캣 등이 있다. 조류도 있지만 그들은 두발로 서는대신 앞다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손이 아닌 날개로 진화 시겼다. 조류가 날개와 손을 동시에 가지고록 진화했다면 현재 지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인류가 아닌 조류였을 것이다. 다행히 발이 손모양이다.
곰을 제외한 대부분의 육식동물은 서서 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서서 경계하는 무리는 대부분 피식자들이다. 경계중에 포식자를 발견하면 경보를 울리고 재빨리 네 발로 뛰어 근거지로 숨어 버린다. 두발로는 재빨리 숨지 못한다. 현재의 인류도 두발로 아무리 뛰어 봐야 사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 즉 직립보행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 의견은 높은 곳의 열매를 취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마치 기린의 긴목을 설명하는 것과 같다.
세번째는 .....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본론이다.
두손으로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두발로만 설수 밖에 없었다는 의견이다. 그럴듯한 의견이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 손의 모양이 문제다. 그때까지 앞발이라 불리던 것을 손으로 고쳐 부르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갗추어야 한다. 이해가 되는가? '사자의 앞발', '영장류의 손' 구분이 필요하다.
이 손을 영장류들은 언제 가지게된 것일까? 이것은 도구를 설명하고 직립보행을 설명하는 키이다.
손이라는 모양을 갗춘 동물을 찾아보자. 포유류중에는 인류와 영장류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곰이나 캥거루가 혹시 먼훗날 손모양을 갗출 유력한 후보자로 보인다. 파충류에서는 많다. 발없는 뱀을 제외하고 거의 앞발이 손모양이다. 양서류에서도 많다. 조류는 앞발은 날개로 뒷발은 손모양이다. 위에서 잠깐 나왓지만 날개와 손은 동시에 가지고 발도 손모양이었다면 조류가 지구상의 최강자가 아니었을까? 조류가 발로 먼가는 하는 모양을 보라. 불안하게 외발로 서서 이따금 날개로 땅을 짚어 균형을 잡고 한발과 입을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양이다. 인류의 손 사용하는 방법과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어류는 없다. 하지만 어류도 그 뼈에 아직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타 곤충과 작은것들은 무시할수는 없지만 뇌에서 이미 큰차이를 보이므로 제외한다.
그럼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근본차이는 바로 체온이다. 이것은 '체온의 비밀-생명 탄생의 기원'으로 따로 작성 될 것이다.
인류는 이미 물속 생활 시절부터 손모양을 가지고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물속생활은 현재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인어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폐가 없으니 그거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공기와 접하면서 폐가 생겨나고 물과 공기중에서 동시에 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선사시대 유적지에 보면 동물보다는 패각류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이들은 아직 물속에서의 식량채취가 더 쉬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을 사용해 조개를 까먹는 선조 인류를 상상해보라. 해달이 배위에 조개를 올려놓고 돌을 손에 쥐고 조개를 깨서 먹는 모습은 지금도 볼 수 있다. 먼가 연관이 되는가?
이때의 인류는 손을 사용햇지만 아직 직립보행 단계는 아니다. 진짜 직립보행은 손에 막대기를 들기 시작햇을때 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 한손에 들만한 막대기가 아닌 두손에 들고 힘을 써야만 하는 막대기, 그것은 바로 나중에 창이라고 불리우는 도구와 같은 것이다. 이런 기다란 것을 들고 네발로 걷기는 분명히 아니다. 이것은 지팡이 대용, 무기로 쓰이면서 인류가 직접적인 직립보행을 이르게 되는 시발점으로 보인다.
꼭 창만큼 길 필요는 없다. 몽둥이처럼 짧거나 창처럼 길든 그저 두 손을 동시에 사용하는데 의의가 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두발로 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음식을 구하는 것 외에 인류 사이의 새로운 쌈질 방법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 새로운 쌈질은 그때까지 맨손에 의한 기본 체력의 우위로 정해지던 것이, 이제는 도구를 사용하여 체력보다는 기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게 된 것이다. 몽둥이를 사용한 타격은 체력의 우위에 전혀 상관 없다. 그게 바로 한방에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후 돌을 덧 붙여 사용하다가, 금속을 발견하고 부터는 급속도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전쟁은 인류 발전의 촉매제이다. 이것은 때로 죽음으로 멸망하거나 퇴보하는 상대가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술 발전을 유발하는 양면의 얼굴을 가진 계륵이다. 이것은 기본 욕망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므로 인류가 욕망에서 벗어 나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돌고 도는 체바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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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하는 것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저 걷는 사람 보고 따라 할 뿐이다. 막대기 들고 쌈질하려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영장류가 아직도 그대로인 이유는 근본 태생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DNA 1%차이의 외형보다 넘사벽인 뇌가 다르다. 이것은 손모양을 가진 모든 동물에 해당한다.
이 글은 이 글의 주제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엄청난 분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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